다양한 경험은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데 큰 영감을 준다. 음악은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관에서의 감상이나 야외 활동 그리고 여러사람들과의 관계까지 연주자들에겐 연습만큼이나 ‘경험’은 중요하게 여겨진다. 연주자들의 흥미로운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즐겁다. 그러나 늘 좋은 이야기만을 나누는 것은 아니다. 연주자의 아픔, 슬픔 그리고 때로는 실패의 과정도 그들의 경험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채원과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동안 젊은 연주자들과의 대화에서는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지만, 김채원과는 어쩌면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할, 아니 경험해 보지 않아도 될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야 했기 때문이다. 아픔을 딛고 오는 7월 5일 14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서울 솔리스트 첼로 앙상블과의 협연으로 복귀를 알릴 바이올리니스트 김채원. 그녀의 이야기는 분명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다
한 연주자를 소개 할 때는 어떤 특별한 점을 부각시켜야 할지 늘 고민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채원과의 대화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녀의 음악 인생에서 주목을 이끌 수 있을만한 요소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악기를 시작하고 예원 졸업 후 서울예고1학년 때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 진학해 미국에서 공부하기까지는 여느 바이올리니스트들과 다르지 않은 시간을 거쳤다. 다만 다른 연주자들보다 유학을 일찍 시작한 점이 다를 뿐이었다.
악기를 언제, 어떤 계기로 잡게 되었나요. 어떤 계기로 이 악기를 나의 전공으로 선택하게 됐는지도 궁금합니다.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건 여덟 살 때였어요. 악기를 하나 선택해서 해야 했는데, 그게 바이올린이었죠. 운명적인 만남도 아니었고, 전공을 하기까지도 특별한 과정은 아니었었어요. 선생님께서 재능이 있다고 해 주셨고, 저 역시 재미있어서 예원 입시까지 할 수 있었어요.
예원학교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일찍 유학을 떠나게 된 계기와 연결되는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예원에서는 기본기를 중심으로 가르침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음악을 바라볼 때 테크닉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테크닉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여겼어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요. 물론 돌이켜보면 그 때 기본기 해놓기를 잘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경쟁하는 분위기에서 음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점점 지쳐갔어요. 서울예고 입시 후에 그 감정이 더 커져 갔고, 음악을 즐기지 못했어요. 가끔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했는데, 저만의 음악을 하게끔 해주는 선생님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이게 어쩌면 저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일찍 유학을 결심하게 됐어요.
힘든 시간을 벗어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을 텐데, 왜 유학을 선택했나요.
언젠간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는 있었어요. 시기가 언제 인지가 문제일 뿐이었죠. 그래서 좀 앞당겼을 뿐이었어요. 실력에도 발전이 없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조금 지쳐 있었거든요.
유학에서의 선택지도 여러 가지가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독일과 미국으로 떠나는데, 그 중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래도 영어가 익숙 한 상태여서 미국으로 갔어요. 미국은 여러 번 다녀온 경험이 있었고, 언니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친근하게 느껴졌죠. 여러 학교들을 지원했는데,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가 저의 1순위이긴 했어요. 17세 때 바로 우리나라 대학 과정과 같은 학사로 진학했어요. 딱히 나이 제한은 없었거든요. 아마도 어렸기 때문에 더 겁 없이 패기롭게 지원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웃음).
이야기를 들어보면 유학을 결심할 때부터가 실제로 본인의 의지로 음악의 길을 걸어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전까지는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었던 것 같아요. 억지로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음악을 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려면 다른 계기가 더 필요했어요.
우리나라 나이로 17세 때부터 유학 생활을 시작한 건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다행히 큰 어려움 없이 적응 할 수 있었어요. NEC는 기숙사가 필수여서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룸메이트가 있어서 불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도 없이 혼자는 못 지냈을 테니까요. 다만 음식이 너무 맛이 없어서 고생 좀 했어요(웃음).
그렇다면 많은 학교들 중에서 왜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를 선택했나요.
일단 보스턴이란 도시가 저와 잘 맞았어요. 그리고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는 오래전부터 늘 가고 싶은 학교였어요.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부터 제 학교가 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웃음). 모던함과 엔틱함이 적절히 섞여 있어서 클래식랑도 연결되어 있는 분위기예요.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공부하는 시간 동안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인가요.
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학은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수빈 김 선생님께 지금까지 배우고 있는데, 선생님을 만난 건 제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이었어요.
수빈 김 선생님께 어떤 가르침을 받았나요.
일단 성품이 너무 좋으셔서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제가 더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세요. 물론 음악적인 깊이도 있으시고요. 이전까지는 기본기, 즉 테크닉에 집중해서 공부했다면 수빈 김 선생님과는 작곡가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배웠어요. 연주자로서 저만의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해 강조하셨죠.
보통은 학사 또는 석사를 마치고 새로운 선생님께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수빈 김 선생님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전히 선생님께 배울게 남았다고 생각해요. 아니, 선생님께는 평생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지난 석사과정 때는 한 분의 선생님과 공부를 더 했어요. 수빈 김 선생님의 스승이신 도널드 와일러스타인 선생님과 함께 했어요.
도널드 와일러스타인 선생님과는 어떤 공부를 했나요.
도널드 와일러스타인 선생님은 수빈 김 선생님의 스승이시기도 한데, 두 분의 스타일은 다르지만 지향하는 방향과 목표는 같아요. 그래서 두 분께 배우는 게 더 큰 시너지를 불러 일으킬 수 있었어요. 와일러스타인 선생님은 몸을 쓰는 방법에 대해 많이 연구를 하셨는데, 저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보잉을 쓰는 법이나 릴렉스를 하는 방법을 함께 연구했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레슨 외에도 뉴 잉글랜드에서의 공부 중에 채원 씨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들을 소개해주세요.
NEC에는 시대에 따라 연주자들의 연주법이 어떤지에 대해 분석하는 수업이 있어요. 첼리스트 로렌스 레서 선생님이 하셨던 수업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분이 하고 계세요. 요아힘, 이자이, 하이페츠 등 시대를 대표하는 저명한 연주자들의 연주법 발전에 대해 공부하는게 제 음악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음반을 듣고 분석하고, 누구의 연주인지 맞추는게 시험의 일부분이었는데 세심한 귀를 만들어주는데 큰 영향을 주었죠. 수업을 통해 브로니슬라프 후버만이라는 연주자를 처음 알게 됐는데 저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이 분의 연주를 들으면 악기 소리라는 느낌보다는 사람이 목소리 같았거든요. 자연스럽게 나는 소리가 좋았어요. 그리고 다른 악기 연주자들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렇다면 유학 생활이 채원 씨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어 주었나요?
NEC의 동료들은 각자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실했어요. 이런 성향이 음악에도 묻어 나오더라고요. 거기서 저는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한 명, 한 명 동료들이 연주를 잘 하든 못하든 배울 점이 한 가지 씩은 다 있더라고요. 실력이나 성적에 따라 줄 세우는 것 없이 모두가 존중받는 문화가 좋았어요. 오케스트라도 로테이션으로 모두 연주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더 자유롭게 공부를 해 나갈 수 있었어요.
링컨센터, 카네기홀 등 미국의 의미 있는 연주홀에서 데뷔 연주를 가졌습니다.
의미있는 공간에서의 연주는 늘 저에게 자극을 줘요. 관중의 에너지가 굉장히 열정적이었고, 이로 인해 제 시야는 더 넓어지게 됐어요. 관객과의 만남이 기대되기 시작했죠.
NEC에서 공부하면서 여느 젊은 연주자들과 마찬가지로 김채원 역시 콩쿠르에 도전할 계획도 세우고,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해나갔다. 물론 연주자로서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을 것이다. 최근 젊은 연주자들에게는 음악에 대한 열망이 매우 큰 것에 비해 기회를 얻는 게 쉽지 않는 것이 주요한 화두였다. 실제로 SNS를 비롯해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개척해 나가고 있는 연주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김채원은 이 모든 고민을 멈추었다. 음악과, 세상과 단절된 시간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타의에 의해서였다. 2022년 9월 림프종을 진단받은 그녀는 모든 걸, 그동안 단 하루도 내려놓지 않았던 바이올린까지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상황이 궁금합니다. 이제는 다 나아 회복했나요.
2022년 9월 림프종을 진단받았고, 1년여의 시간 동안의 치료를 마치고 이제는 관해가 된 상태예요.
처음 어떻게 병을 알게 됐나요? 림프종이 쉽게 걸리는 병도 아니고, 특별한 증상이 있지도 않았을 텐데요.
여느 때처럼 학기 시작 몇 주 전에 미국에 도착해서 학교 준비하던 중, 감기가 쉽게 낫지 않아 병원에 갔는데 진단받게 됐죠.
진단을 받았을 당시 어땠나요. 당시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상하게도 진단을 받고 나서 큰 충격 없이 바로 제 상태가 받아들여졌어요. 그동안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구나, 치열하게 공부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이 상황에도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바로 받아들여지게 됐어요. 그런데 치료가 끝나고 난 후 여러가지 감정들이 후폭풍처럼 오더라고요. 그제야 원망도, 분노도 올라왔어요.
1년 동안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요. 악기를 손에서 놓는건 그동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텐데요.
치료 기간 동안 악기를 아예 잡지 않았어요. 아니 잡을 수가 없었어요. 항암치료의 부작용 때문에 온 몸의 세포가 파괴되기 때문에 신경이 마비되고 손가락 감각이 없어져서 악기를 아예 연주할 수가 없었죠. 당연히 컨디션도 연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요. 그렇게 악기를 오랫동안 연주하지 못했던 건 처음이어서 저 역시 적응이 안 됐어요.
물론 치료 과정도 너무 힘들었겠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뒤 쳐져 있다는 현실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동료 연주자들은 한창 공부하고 연주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마음이 정말 힘들었어요. 특히 음악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슬펐죠. 공부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했어요. 아프지 않았다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을 테니까요. 한편으로는 처음으로 음악과 잠시 떨어져 온전히 저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 특별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쉬어 본 적도 없었고요(웃음).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면서 음악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죽을지도 모를 확률이 있는 병에 걸렸는데도 음악이 떠올랐고, 음악으로 인해 얼른 회복 해야겠다는 힘을 얻기도 했거든요. 아픈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많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음악 하나만으로 활력을 찾을 수 있다는 기분을 잊지 못해요. 몸은 허약해졌지만 그래도 내가 연주자라는 감각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죠. 희망적이었어요.”
투병 과정 중 음악에 대한 열망이 가장 커졌을 때는 언제였나요.
공부를 마치는 게 우선이 아니라 연주를 하고 싶었어요. 연주가 너무 하고 싶은 데 할 수 없다는 현실이 더 화났어요. 병실에 시체처럼 누워있을 때 할 일이 없어 오랜만에 음반을 들었어요. 그런데 듣자마자 딱 세포가 깨어있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 음악 하나만으로 활력을 찾을 수 있다는 기분을 잊지 못해요. 몸은 허약해졌지만 그래도 내가 연주자라는 감각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죠. 희망적이었어요.
회복 과정도 궁금합니다. 거의 1년 동안 악기를 연주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래서 더 악기를 빨리 잡고 싶었을 거고, 빨리 복귀하고 싶었을 것 같아요.
2023년 7월에 치료를 모두 마쳤고, 그리고 바로 악기를 잡아봤어요. 정말 악몽 같았어요. 머리나 마음은 예전처럼 연주하고 있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거든요. 아무래도 독한 약을 투입하다 보니까 돌아오는 게 빠르지 않았어요. 과연 예전처럼 할 수 있을까,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너무 컸어요. 악보를 읽는 속도도 느려졌고요. 상실감이 너무 컸고, 불확실함의 연속이었어요.
그럼 힘든 시간들은 이제 다 극복했나요.
지금도 극복하는 중인 거 같아요. 그저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살려고 노력했고, 또 노력하고 있어요.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기도 해요.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는데, 이 변화에 아직 적응 중이에요. 그 과정에서 수빈 김 선생님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어요. 선생님께서 항상 저에게 안부를 물어주시며 영상 통화를 걸어 주셨어요. 특히 저의 정체성에 대해 리마인드 시켜주시며 큰 힘이 되어주셨죠. 악기를 다시 잡는 데에 어려움을 덜어주셨어요. 선생님과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거든요. 그렇게 연주에 대한 감각도 천천히 찾아나가기 시작했죠.
어떻게 연주 감각을 회복해 나갔나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연주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느리고 음악적인 곡들을 위주로 연주했어요. 악보를 읽는 감각도 느려져서 빠른 곡이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느린 작품부터 차근차근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돌아오더라고요. 몸이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어요.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죠. 소름 돋을 정도로 놀라웠어요. 20년 한 음악이 어디 가지는 않는구나 싶었죠. 특히 약의 기운 때문에 몸에 힘이 완전 빠졌는데, 그게 오히려 악기를 연주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 거 같기도 해요(웃음). 릴렉싱은 연주자들에게 언제나 중요한 숙제 잖아요. 요즘은 예전만큼 연주가 저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는 않아요.
아픈 시간을 겪고 나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삶을 송두리째 흔들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를 딛고 현실로 돌아오는 것도 하나의 회복 과정 이었을 거예요.
그동안 하던 공부를 계속 이어나가고있는 데, 사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어서 공부도 새롭게 다가와요. 그렇다고 제 미래가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여전히 불투명하고, 어떻게 미래를 그려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죠. 다만 아픈 후에는 어떻게 하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 더 자주 고민을 해요. 그동안은 눈 앞에 일만 보고 해결하기 급급했고, 커리어만 쫓아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아프고 나서 더욱 허망함 같은 걸 크게 느꼈어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조급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해요. 여유롭게 음악을 바라보고 할 수 있는걸 하나씩 해나가려고 해요.
7월 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서울솔리스트첼로앙상블과의 연주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연주를 앞둔 소감이 남다를 텐데요.
투병 후 첫 연주예요. 저에게 더욱 의미 있는 연주가 될 것 같아요. 제안이 왔을 때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바로 수락했어요. 아마도 탈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뭐라도 잡아야 했고, 연주에 몰두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 반가웠어요.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는데 좋은 제안을 주셔서 감사했어요.
연주를 어떻게 준비해 나가고 있나요.
일단 작곡가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작곡가 본인의 연주자료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되는데, 다행히 피아졸라의 영상이 많아요. 음반도 많고요. 그래서 그 자료들을 통해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어요. 연주해야 할 방식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어요.
앞으로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채원이 궁금합니다.
이제는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해요. 아프고 나니 건강한 것도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분명한 건 음악의 위대함을 알리는 전달자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제가 부각되는 것보다는 음악을 더 많이 알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누군가의 아픔을 드러내는 건 언제나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 아픔의 깊이를 직접 겪지 않고서는 감히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김채원의 힘든 시간을 글로 모두 담아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누군가는 새로운 용기를, 누군가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또 다른 누군가는 어쩌면 음악에서의 아이디어를 얻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다. 겪지 않아도 될 아픔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분명 그녀의 음악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어쩌면 이 이야기가 그녀의 음악을 궁금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서툴게 바이올리니스트 김채원을 응원을 해본다. — The Strad Korea, 2024. 7.
Additional recordings and video links are added here as they become available.